이거슨... 재작년(이 맞을 겁니다) 려욱이 팬사이트 연합으로 생일페이지(이걸 어떻게 말하는지 까먹었어요)를 만드는데 제출한(레포트도 아니고 ㅋㅋ) 소설입니다. 제 성향으로 분명 roommate라고 해야 했겠지만 역시 영어랑 한국어는 질감이 틀리잖아요? 한국어가 좀 더 사랑스럽죠. (ㅋㅋㅋ)
뭔 생각이었는지 쭉 안 올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올립니다. 왜 안 올렸는진 저도 잘... 오타 때문인가?;; 오타 있을 거에요. 없으면 이상한 저니까요. 여튼 신체검사도 무사히 끝났고~ 하루에 30만원 넘게 쓰니까 통장 잔고가 무서워져서 어머니께 더욱 효도해야겠단 생각을 했네요.
그 전에 영어부터 우선... 아흐ㅠ.ㅠ 요새 영어만 보면 짜증나 죽겠어요. 8개월로 접어드는 짜증대폭발 기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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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범이의 표정이 진지한 것으로 봐 지금 이 새끼가 내 뱉은 말은 한치의 거짓도 없이 매우 진중한 것이란 얘기다. 평소에 농담 따먹기도 진지하게 해서 물론 이런 나의 판단이 옳은 것인지는 매우 의심스럽지만 믿으라면 믿어야지 어쩌겠는가. 따르라면 따를 것이고. 그러나 그런 바람과는 전혀 상관없이 나의 주먹은 원터치 쓰리강냉이를 위해 쭉 뻗었다. 얼굴에 채 닿기도 전에 손목을 잡아서 휘휘 피하는 기범이를 보고 있으려니 이미 성질머리는 활화산처럼 곧 폭발할 듯 치솟고 말았다.
“씨발, 이 새끼가 장난해?!???? 뭐라고!!!!!”
“아아- 진짜 미안하다니까. 딱 네 달만. 어? 이번 학기만 끝나면 중국으로 돌아간다잖아. 형. 우리나라의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데 다 이런 일이 일조하는 거야. 어글리 코리안 보다야 프리티 코리안이 낫지 않겠어?”
“씨발, 말은 졸라 잘하지…. 그래서 네가 책임도 못 질 저 개새끼를 끌고 왔냐, 이거다 내 말은!!!”
이미 소 귀에 경읽기다. 불쌍하지 않냐며 옆에 앉아있는 남자애의 어깨를 두드리며 측은하게 나를 본다. 개새끼도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는지 큰 눈에 눈물을 달고서 슈렉 2에 나오는 장화 신은 괭이처럼 바라보고 있다. 이런 젠장-…. 하여간
김려욱, 28세. 이름도 이해 못 할 중국인과 동거를 시작하다.
#. 룸메이트
집으로 들어오는 녀석 앞에 앞장서서 팔짱을 끼고 노려보았다. 그런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쌩 하니 집으로 들어오며 여기저기 둘러보며 신기하다, 특이하다를 외치는 놈의 목소리에 얼이 빠졌다. 저 놈은 집이란 곳을 처음 와보나? 무슨 이상한 나라에 온 폴도 아니고 여기저기 뛰어 다니기 시작하는 놈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조용히 해!! 뛰어다니면 밑층이 시끄럽다구!!”
“What?”
“You!! Be quiet!!!”
근데 뛰어다니면 밑층이 시끄럽다는 걸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지? 그러니까 만약에란 가정을 붙이면 if…가 맞을 거고. 뛰다니까 run이겠지. 시끄럽다? 시끄럽다? 시끄럽다가 영어로 뭐였지? 아, 맞다! 순간 머리를 스친 동방신기의 오우-정.반.합의 가사! 그래! Noisy!
겨우 혼란스럽던 머리를 정리해서 손을 허리에 얹고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If you run, noisy!!”
“…미안해….”
그래, 미안하겠지. 이런 타국에 와서 남의 집에 얹혀 사는 것도 모르고 예의 없이 쿵쾅거리며 뛰어다녔는데 안 미안하면 그게 사람이겠니. …-잠깐.
“뭐야 너?! 한국말 할 줄 알잖아!!!!”
“아…. 한긍 한국어 알아. 녀…녀우기? 녀욱?”
“려욱, 김려욱!! 악!!!”
“리슈 더 시끄러워.”
방금 뭐라고 했냐, 아가야? 입근육이 제멋대로 저 녀석을 저주하고 물어 뜯으라고 세포 하나하나가 발작을 일으키는 동안 위대한 뇌가 가만히 입 닥치고 조용히 있어보라며 참을 인을 수십 번 새기라 명령한다. 그래~ 어글리 코리안 보다야 프리티 코리안이 좋지. 그게 국위선양이지 뭐야.
“씨발아!!!!”
**
침대에 누워 천장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중국인 새끼랑 한 집에 사는 건 내가 할 짓이 아니다!! 비록 끽해야 고등학교 행정부실 말단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도대체 내가 왜, 왜, 왜
문을 벌컥 열고 나오니 자신이 우렁각시라도 되는 마냥 환하게 웃어 보이는 녀석의 모습에 비굴하게도 나의 오감은 항복하고 말았다. 노총각에게 밥이란 천국이나 다름없는 존재니까, 난 결코 죄를 저지른 게 아니다. 단지 본능을 따를 뿐이라는 거지.
집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접시에 담긴 볶음밥을 보니 김치 생각이 난다. 왜 니가 김치 자리를 대신 꿰차고 있는 거냐 생양파…. 짧게 손을 모으고 기도한 후 밥을 먹기 시작하는 녀석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왜 크래?”
“이 새끼 왜 반말 찍찍해. 나보다 나이도 어린게.”
“리슈 입 거칠어.”
“그리고 내 이름은 리슈가 아니라고!!!”
“리슈 화 났어? 보…보큼……부큼……부켱…부켱밥 먹고 풀어!!”
“부켱밥? 북경밥? 볶음밥 말하는 거야?”
“그래! 부켱밥!! 맛있어!!”
네 놈하고 무슨 대화를 하겠니. 난 포기했다. 그리고 볶음밥이 왜 북경밥이 되는 거야. 너 한국어 배울 생각 있긴 있냐. 뭔가 잘 못 됐다 싶으면 고칠 생각을 해야지 그걸 지 마음대로 발음을 고쳐서 해. 그래가지고 평생 한국어 제대로 못 배운다 너.
생각보다 북경밥인지 볶음밥인진 먹을만 했다. 하지만 김치가 없어서 영 입맛에 당기지 않는다. 만들어준 성의를 생각해서 억지로 쌩양파를 씹어가며 먹었다. 김치만 있었으면 정말 맛있는 건데. 내일 집에 오면서 마트에 들려야겠다. 이 녀석도 데리고 가서 다음부터 꼭 김치를 상 위에 올려놓으라고 해야지. –아, 학교의 쓸데없는 새끼들이 알면 안 되는데….
**
억지로 마트에 끌고 왔는데 좋아하며 이것저것 신나서 묻는다. 진짜 널 왜 데려 온 걸까? 땅치고 후회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카트를 밀고 있는데 녀석은 넣기 바쁘고 나는 빼기 바쁘다. 아이들이 보는 책 코너에 멈춰 서서 이것저것 보던 한경이 나에게 책을 보여줬다. 너 지금 이거 배우려고…? 곰돌이 푸우의 이야기가 한글로 또박또박 예쁘게 적힌 책을 보고 한숨이 푹, 났다. 어쩌라는 거야, 이거.
“한경 책 본다 하고 싶다.”
“보고 싶다구? 넣자, 넣어. 에라이 이거 하나쯤.”
“어머- 조카 분 책 사시러 오셨나 봐요, 삼촌들끼리.”
“예? 하.하.하.- 많이 파세요!”
매장녀가 말 붙일 때는 무조건 발 빼야 된다. 그 현란한 말빨에 속으면 끝장이니까. 그런데 왜 저 놈은 붙잡혀 있는 거냐구…. 한숨을 꾹 들이마시며 카트를 쐐앵 밀고 다가갔다. 매장녀가 솰라솰라 친절하게 이상한 나라의 폴이 쓰는 말을 하고 있는데 그 말을 끝까지 다 듣는 한경이를 보니 왠일인가 싶다. 한국어 완전 못 하는 건 아닌가 보지? 저 빠른 속도를 다 알아들어? 녀석은 심각하게 매장녀가 권하는 책들을 듣고 있었다.
“아시겠죠?”
“휴…. 한긍 중국사람. 한쿡말 몰라효. 리슈 가자.”
내가 니 똥개새낀 줄 알아!! 자꾸 리슈리슈 했다간 만두 백개 입에 쳐 넣을 줄 알아!!! 눈에 불을 켜고 성큼성큼 멀리 가는 녀석을 따라잡았다. 나보다 다리가 20센티는 긴 건지 걸음 맞추기도 힘들다. 겨우 따라잡자 녀석이 한참 무를 들여다 보다가 씨익 웃었다.
“리슈 이거 닮았다.”
“씨발아- 지금 장난 까니?”
내가 왜 무도사도 아니고 무도영도 아닌데 무야. 통통한 무를 들어올리며 우렁각시 웃음을 짓는다. 지금 내 눈동자가 칼춤 추는 게 정녕 안 보인다, 이거구나- 너는.
“여기. 닮았어. 이거.”
“어딜 만져!!!”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더니 허벅지를 한 손으로 잡으며 무를 들이민다. 지금 내 다리 굵다고 시위하는 거야, 뭐야?! 너도 다리 안 얇거든!! 허벅지 안쪽 살이 은근 민감해서 그런가. 생소한 기분에 화보다 당황스럽다. 뒤로 확 떠밀어 버리고 닭고기와 돼지고기가 반기는 파라다이스로 쌩 하니 달려갔다. 오늘은 돼지 허벅다리 살이라도 구워먹어야겠다.
**
“야! 김려욱!!”
“……이 곰색히가….”
멀리서 복도를 쿵쾅거리며 뛰어오는 녀석을 향해 레이저빔을 날렸지만 그 모든 빔을 피하고서(정확히 말하자면 맞아도 아무 타격도 없지만) 뛰어온 곰탱이가 갑자기 나를 확 들어올렸다. 덕분에 대낮에 복도에서 비명을 질러 버리고 말았다. 내 나이가 너하고 열살 차이다, 이 무식한 곰색히야!!! 너는 쳐 먹고 다 키로 크니?! 아니 다 살로 가니?! 분명 내 몸무게도 남자라서 만만찮을 텐데 왜 이렇게 쉽게 드는 거야!! 공중에 뜬 느낌에 실로 미치겠다. 나 고소공포증 있단 말이야, 김곰아!!
“야!! 안 놔!!! 이게 뭐하는 짓이야!!”
“싫거든~ 나는 오늘 꼭 널 납치해서 따 먹고 말겠다~ 으하하하하~.”
“
-아니 저기 그렇다고 스커트 자락 휘날리며 뛰어오실 필요까진 없습니다,
어쨌든 덕분에 복도에서 공방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난 그냥 교무실에 교감 선생님한테 서류를 검토 받으러 갔을 뿐이란 말이다. 말단이라고 그런 거 다 하는 거니까 아무 상관 안 하겠는데 왜 지금 이런 상황이 되야 하는 건데…. 아예 어깨에 둘러메고 뛰기 시작하는 녀석 덕에 조선시대 보쌈 당하는 여인네 신세가 돼버렸다, 젠장!
숨차라 도망 온 곳이 겨우 뒤뜰. 같은 재단 중학교 건물 뒤라서 그런지 멀리
“흥. 꼬맹이 주제에 배려하는 척 하긴….”
“그런 꼬맹이 배려 다 받는 건 뭐야?”
“메롱이다, 베-“
캔을 따서 한 모금 마시고 혀를 쑥 내밀었다. 정작 뛰어오느라 힘들었을 사람은 자신일 텐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히죽히죽이다. 수업 안 들어가도 되느냐 구박해봐도 이미 공부하고 거리 먼 녀석인 것은 내가 더 잘 안다. 그러다 갑자기 컵이 찌그러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사춘긴가? 이런 때의 남자아이들은 감정기복이 심한 것 같다. 이 녀석만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무튼 또 뭐가 불만인가 싶어 빤히 쳐다보았다.
“어제 그 남자 뭐야?”
“뭐?”
“마트에서. 그 남자.”
“너 나 스토킹 하냐?”
“대답이나 해, 아저씨.”
“뭐?! 아저- 어우…. 너 나중에 나 결혼하면 넌 절대 안 불러. 알았어? 찾아오면 죽어!!”
“대답해.”
강압적으로 어깨를 돌리고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눈빛에 나도 모르게 긴장해버렸다. 아씨- 난 표정 다 보이는데…. 이 상황에선 거짓말도 안 먹히려나. 농담도 안 먹힐 것 같은데 거짓말을 생각하다니 간땡이가 크긴 커, 김려욱.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하자니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오바하는 것 같고.
“그냥, 같이 사는 애야.”
“뭐?! 같이 살아?!! 미쳤어?? 남자하고 같이 산다고?!!??”
“아- 귀아파. 왜 소리 지르고 그래. 살 수도 있는 거지.”
“…그래서.”
“왜 이래…- 야, 이거 안 놓을래?! 아파-!!”
“어디까지 했는데.”
어깨를 잡은 손을 말없이 바라보며 잡아주자 무안해진 건지 결국 어깨를 잡은 손에서 힘을 뺀다. 대답하지 않고 음료수를 마셨다. 뭘 원하는지 빤히 안다. 아무리 감추려 애쓰고 어른인체 하려 해 봤자 십 년이란 차이는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쓸어 넘기 듯 입 안에 음료수를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 열 살만 더 먹고 오면, 너한테 시집가 줄게. 네가
푸- 입술을 내밀고 퉁퉁 거리는 녀석을 억지로 교실로 보내고 행정실로 돌아갔다. 전에 한 번 기범이를 애인이라고 속인 것 때문에 다소 밀어 부치는 태도가 한풀 꺽이긴 했다. 이번엔 기범이랑 같이 눈 앞에서 키스라도 해 줘야 할까 봐 걱정이다. 저런 말로 포기하게 하려 애쓴 게 도대체 몇 달 째인지. 애쓴다, 애써. 이 죽일 놈의 곰새끼 때문에.
**
그럭저럭 한가한 주말이다. 대학생들이 즐기는 음주문화에 한경이 빠지면 안 된다고 기범이가 미리 연락을 한 탓에 별 걱정은 안 한다. …걱정? 내가 걱정을 왜 해? 그딴 녀석 없으면 집 조용하고 좋지 뭐.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에 신나게 웨이브 추는 핸드폰을 받으니
적당히 한식집에서 즐겁게 얘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은근히 취향이 통하는 면이 있다. 그러고 보면 집에서 결혼하라고 난리인데, 김선생님 정도면 얼굴 예쁘겠다, 몸매 좋겠다, 돈 잘 벌겠다,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다. 연애 좀 하다가 결혼하면 안 될까나- 불순한 생각을 머릿 속에서 열심히 계산하며 문을 여는데 왠 개새끼가 튀어나와서 짖어댄다.
-……개새끼?
“아, 쏘리쏘리! 길에서 울코 있어써. 불쌍하잖아. 씻기니카 흰 색 된다. 신키해.”
“…….”
물기 젖은 개새끼가 신나서 뛰어다니며 물을 흩뿌린다. 끝내는 소파 근처에서 물을 부르르 털며 몸을 쭉 뻗고 기지개까지 켠다. 개새끼 털 만큼 머릿 속이 새하얗게 질려간다. 그런 개새끼를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돌려 비슷한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주워와도 꼭 지랑 비슷한 걸 주워오는 구나, 역시 개새끼였어.
“당장 짐 싸서 나갓!!!!!!!!!!!!!”
**
그런 내 말이 먹힐 리가 없지. 대뜸 나가라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치헤-‘하고 개새끼를 부른다. 왜 이름이 치헤냐 물었더니 지나가던 여자애 이름이 지혜였단다. 그거 남의 이름 도용한 거잖아!! 그리고 나를 보고 당당하게 했던 말이, 중국인이라 한국어를 모르겠단다. 내가 이 개새끼를 지켜본 후 깨달은 점이 있는데, 이 놈은 자기 불리할 때는 항상 중국인이란 핑계를 댄다는 거다! 저번 마트에서 눈 여겨 봐뒀어야 했다!!
개새끼랑 이 놈이 이 집에 얹혀 산지도 벌써 이주째. 다행히 동물병원에서 몇 가지 예방 접종과 검사 후 데리고 살아도 좋다는 판결이 났다. 나에겐 불행이었지만. 간만의 휴식에 소파에 드러누워 한가하게 오씨엔양이랑 데이트를 하는데 눈치 없는 치헤가 고새 내 입에 들어가는 감자칩을 달라고 팔짝팔짝 뛰어댄다. 결국 소파 위로 올라온 치헤에게 어쩔 수 없이 먹여주니 입에 들어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이러니 살이 확 불지.
중국인 스킬로 아파트의 항의를 모두 상큼하게 씹어버리고(아줌마들은 한경이의 외모에 넘어간 것 같지만) 치헤는 덕분에 아주 잘- 살고 있다. 문제는 주말에도 불려나가는 한경이 때문에 내가 치헤랑 노는 시간이 더 많지만, 치헤는 날 우습게 보는 것 같다. 이것 봐, 지금도 또 배위에 올라타고 헥헥 거리는 거. 발정 났냐?
말은 좀 싸가지 없지만 얼굴도 잘 생겼겠다, 키도 크겠다, 밥도 잘 해주겠다, 성격도 착하겠다. 물론 성격과 말의 싸가지는 전혀 다른 항목이란 걸 한경이와 만난 후 깨달았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게이 성향을 가진 내가 그런 한경이를 보고도 지금까지 꿋꿋이 참아온 건 스스로 대견할 정도다.
아예 감자칩 봉지를 혀로 핥고 있는 치헤를 들어 가슴에 꼭 껴안았다. 나는 눈에 뵈지도 않는지 봉지를 향해 구애하는 녀석의 몸에 코를 킁킁 거렸다.
“휴…. 이 정도면 난 부처야. 어떻게 지금까지 참았담…. 곧 승천하겠다.”
허벅지에 바늘 찌르는 날이 앞으로 3개월. 죽어나야겠구나. 학교에서 영운이를 조심해야겠다. 까딱 맛 가서 덮치기라도 하면 규현이가 날 최소 살인할지도 모른다. 그 전에 영운이가 먼저 죽긴 하겠지만. 흐으- 암튼 그 잔소리 스킬을 겪고 싶진 않다. 애늙은이가 정신을 초토화 시키는 법은 언제 익혔담. 한참 딴 생각을 하다가 또 한경이 생각이 났다. 어느새 치헤는 바닥에 떨어진 봉지를 제 연인마냥 부대끼며 신나서 굴러다니고 있다.
젠장…. 개새끼도 연인이 있는데 사람인 내가 이 고생을 해야 되나-? 기분도 우울한데 클럽이나 가야겠다.
**
“얼- 왠일이라니. 고딩 말단 행정도 선생의 일종이라매. 애들한테 교육상 안 좋은 짓은 즈얼대애 안 하겠다구 하지 않았드랬니.”
“즐.”
대뜸 날리는 말에 은혁이가 피식 웃는다. 특별히 춤을 춰서 스트레스를 푸는 성격이 아니다. 남이 추는 걸 보고 있으면 같이 스트레스가 풀린달까…. 은혁이는 그런 내 버릇이 바람둥이란 소리를 듣게 하는 거란다. 그러고 보면 잘 춰서 구경하는 것뿐인데 자신을 유혹하는 걸로 착각하는 사람도 꽤 됐다. 덕분에 서로 즐기고 좋긴 했지만. 남자든 여자든 한 명만 제발 걸렸으면- 스테이지 쪽을 바라보는데……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개기범 새끼와 눈이 마주칠라 홱 돌렸다. 운도 드럽게 없지.
왜 맘 먹고 나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난 정말 그냥 아무나, 그게 남자든 여자든 하나 낚아서 나이스한 원나잇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다. 은혁이가 컵을 닦다가 왜 그러냐며 어깨를 흔든다. 이러지마. 개기범이 날 알아보면 술값을 내가 다 뒤집어쓸 정말 개 같은 확률이 일어난단 말야. 집에 치헤를 두고 뛰쳐나온 내 잘못이다. 그래, 내 잘못. 젠장!!
“야, 나 그만 가….”
“오, 이게 누구야.”
-…이런 젠장.
“횽아 안녕? 오랜만이다. 이 나이에 아직도 여기 들락거리는 것도 재주야, 그치?”
“갈 테니까 지지고 볶든지 니 마음대로 해라.”
“왜- 한경이 우리랑 놀고 있으니까 같이 가.”
“돈 없어.”
“와- 형은 날 그런 파렴치한으로 봐? 아무렴 말단 공무원 돈을 뺏을까 봐? 형, 너무 낚시질만 즐기면 인생이 허무해져. 젊은 피라미들하고도 좀 놀아야 좋지. 어차피 형은 돈보다 이게 있잖아. 이거이거.”
엉덩이를 스리슬쩍 주무르면서 하는 말에 주먹을 날릴까 하다가 돈을 안 내도 좋다는 말에 잠시 갈등했다. 어차피 오랜만에 온 거였는데 젊은 애들하고 놀아서 손해 볼 거 없지. 결국 은혁이에게 손을 흔들자 알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사 눈치챘지만 개기범 술 많이 마셨구나. 옆에서 술 냄새가 진동한다. 근데 난 니 원나잇 상대가 아닌데 고만 내 허리에서 팔 좀 떼지? 술 들어가면 인사불성인 녀석이니 그러려니 참지만 조만간 팔로 밧줄이라도 만들겠다. 답답함을 느낄 때쯤 테이블에 도착했다.
우연히 만난 친구라고 속여도 어두운 조명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선지 다들 믿는 눈치다. 4살 어린 것들하고 놀려니 좀 켕기긴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부킹도 잘 되겠지.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테이블 가에 잡아당기는 팔에 내려다보니 한경이다. 옆에 앉으니 귓가에 말을 속삭인다.
“치헤는?! 밥 줘써?! 성켝 나파서 제때 줘야해.”
“줬어. 그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흥-“
“둘이 아는 사이? 벌써 귓속말 주고 받는 거야?”
농담으로 던진 말에 정색하며 떨어졌다. 뭔가 표정이 굳는 것 같았지만 경아, 넌 집에 가서 많이 볼 얼굴이잖아. 난 여기서 아무나 건져야 된다구. 오랜만에 마시는 술에다 예쁜 아가씨들하고 합석까지 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신이 나서 부어라 마셔라 해대는데 어느새 다들 스테이지로 나가 몸을 흔들어댄다. 이 나이에 너무 무리했나- 속이 거북하고 머리가 어질해서 테이블에 잔이 넘어지는 것도 무시하고 엎어져 있었다. 이마에 차가운 수건이 닿아 옆을 보니 한경이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집에 칼래? 리슈 너무 무리해.”
“후… 무리? 내가 이 정도 마시고… 쓰러질 거 같애? 흥…….”
비척비척 무대 위로 나가 아무하고나 몸을 비벼댔다. 내가 아무리 이십대 후반이라지만 아직은 팔팔하다 이거야-. 그래도 맨날 고등학생이랑 부대껴 사는 사람이라구. 그런데 머리가 너무 어지럽다. 진짜 한경이 말대로 너무 무리했나 보다. 결국에 쓰러지기 전에 누군가가 받아주는 덕에 뇌진탕은 면했지만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
깨질 듯이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앉았다. 아- 집이다. 한국 온지 얼마 됐다고 집도 잘 찾아. 역시 젊어서 학습능력도 좋은 모양이다. 거실로 나와 화장실로 들어가 안에 든 것을 토해냈다. 진이 다 빠져서 이를 닦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혼자 사는 주제에 누군가에게 기대는 건 웃기는 짓이다. 물을 끓이고 냉장고에 넣어뒀던 집에서 얻어온 설탕꿀을 탔다. 식을 때까지 식탁 위에 두고 멍하니 보고 있는데 또 졸립다. 먹고 바로 자야겠다.
누군가가 몸을 일으켜준다. 꿀물까지 먹여주는 세심함에 감탄하고 있는데 한경이다. 같이 사는 사람이 이 인간뿐이니 당연한 건가. 눈이 붙었으면서도 제대로 방에 데려다 준다. 자기도 졸린 주제에 왜 날 챙겨…. 술도 어느 정도 깼겠다,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가려는 걸 붙잡고 사과하려는데 말을 채 하기도 전에 내 몸을 쓰러뜨린다.
잠깐잠깐. 물론 내가 굶주린 것도 맞고 네가 잘난 것도 맞지만, 지금 이 상황은 좀 아니잖아?! 닿아있는 아랫도리에 당황해서 밀어내려는데 꿈쩍도 않는다. 어떡하지- 고민하는데 귀에 들리는 새근거리는 숨소리. 그래, 내가 너한테 뭘 바라냐. 낑낑거리며 침대 위로 올려두고 등을 돌린 채 잠을 청했다. 등에 맞닿은 온기 때문인지 울리는 심장 때문인지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
멍하니 책상에 턱을 괴고 있는데 강력하게 뒷통수를 강타하는 파일에 고개를 홱 뒤로 돌렸다. 눈을 부라리며 바라보다가 한풀 꺽여 버렸다. 흐아. 오늘 왜 이래. 부장님한테 하필 걸려도 걸린담.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있는데 열심히 하라는 한 마디에 군기 바짝.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점심까지 먹고 교정을 걷고 있는데 어깨에 둘러지는 팔에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니가 백날 이래봐야 소용 없단다, 김곰아.
“고민 있어요?”
“어?”
어랍쇼. 김곰이 아니다. 왠일로
“있지.
“예?”
그건 내가 이런 말을 할 거라고 생각을 못 해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내가 너한테 고민 상담 따위 안 할 거라고 생각해서 나오는 말이냐? 녀석이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이라 역시 괜한 걸 물었나 싶어 시큰둥한 표정으로 돌아가려는데 씩 쪼갠다. 내가 두 번째로 싫어하는 표정 나왔구나. 첫 번째는 방금 본 놀란 표정. 진심으로 소름 돋았어.
“혹시 욕구불만이세요? 성관계를 원활하게 가지지 못 하고 있다던가… 뭐 그런….”
에라이 미친놈아. 너한테 정상적인 대답을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멀리서 미친 티라노 사우르스처럼 뛰어오는 영운이에게 규현이를 떠넘기고 행정실로 들어갔다. 말이야 바른 말로 그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눈 앞에 보이는 가슴팍에 놀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경이 그 놈에게 내가 성욕을 느껴… 아 느끼긴 하지만. 아무튼 욕구불만이라니, 내 인생 최대 굴욕이다. 아무래도 오늘 몸을 좀 달래줘야 할 운명인 모양이다. 여자친구 진작 좀 만들걸. 휴….
집으로 들어오는 반기는 건 치헤 뿐이다. 다른 개들은 주인 나가면 발악하고 미치고 돈다는데 얘는 개의 탈을 쓴 고양이과인지 얌전히 잘 있는다. 덕분에 나나 한경이가 할 걱정이 덜어서 좋긴 하지만, 가끔 날 빤히 보는 눈빛을 보면 역시 단순한 강쥐 같지 않단 말야….
“오늘도 경이는 늦네-. 치헤 심심하지~? 형아랑 놀까?”
침대 위로 풀썩 눈고 치헤를 향해 손짓하니 대번에 뛰어오른다. 치헤가 온지도 벌써 한 달인가. 이제 두 달 있으면 가겠구나. 언제 돌아가나 돌아가나 노래 불렀는데 이제 남은 시간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허하다. 이래서 누구랑 같이 사는 게 싫어. 좋든 싫든 그 흔적이 남아서 짜증난단 말야. 그런데 꾸물꾸물 아랫도리가 눌려지는 기분에 내려다보니 치헤가 내 배 위에서 뒷발로 꾹꾹 누르고 있다. 이 발정난 개새끼가 결국 일치려고 이러나. 아무리 궁해도 개새끼한테 위로 받고 싶진 않단 말이다.
손을 뻗는데 고새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서 대가리를 턱하니 페니스 위에 얹는다. 그래, 너 잘났다. 넌 평범한 강쥐가 아니다. 됐지? 그러니까 남의 민감한 데서 빨랑 떨어지란 말이다!!!!! 겨우 치헤를 베란다 쪽에 내쫓아 버리자 현관문이 열린다. 씨발, 와도 하필 이런 때 오고 지랄이야. 인사하고 바로 들어가려는데 기범이가 주랬다며 봉지를 쥐어 주려고 다가온다. 평소였으면 바로 치헤한테 달려가서 부비적 거려야할 새끼가 오늘따라 무슨 바람이야. 피 쏠려서 죽겠단 말이다!!!
“왜 크래? 리슈 아파?”
“아니이-야…. 아프긴 내가 왜애-. 들어가봐- 하, 하하하~”
날 제발 방으로 보내달란 말이다 씨발아!!! 목구멍 끝까지 욕이 올라찼지만 아파서 욕도 안 나온다 진짜…. 너무 쌓았어 이런…. 들어가려는데 끝까지 팔을 잡고 놓아 주질 않는다.
“화났어? 늦케 와서?”
“아니라니까아- 정말- 왜 이러니이- 응-?”
내가 왜 너 늦게 오는 걸로 화를 내야 하니. 때마침
“야, 한경. 너 나랑 섹스하자.”
“…어?”
“걱정마. 내가 바텀할 테니까. 이게 다 세상 경험이란 거야. 그냥 넌 가만히 있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침대에 눕히고 배 위에 올라타자 무슨 상황인지 판단이 됐는지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일어나려는 걸 막고서 하의를 급하게 벗어냈다.
“애무 즐겨? 난 안 해도 상관없는데.”
“리슈 치큼….”
“하- 완전 꼴려.”
한경이 바지의 벨트를 풀고 자크를 내리자 축 늘어진 힘없는 녀석을 잡고 흔들었다. 아픈지 얼굴을 찌푸리는 한경일 보니 차라리 술을 먹여서 덮치는 게 나았나 싶기도 하다. 술도 안 마셨는데 벌써부터 몸이 달아오른다. 오랜만에 즐기는 섹스라고 생각해서 더 그런가 싶다. 잡 생각은 집어 치우고 눈 앞에 있는 녀석을 열심히 립 서비스를 해주자 고새 커진다.
“한경이도 많이 외로웠나 보네-. 아님 이렇게 당하는 건 처음이야-?”
“흐- 이, 이러치 마…. 이러면……. 으….”
“이러면 뭐?”
손으로 피스톤질을 해주자 아예 빳빳하게 서버린다. 창피한지 얼굴을 가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러다 나중에 우는 거 아닌지 몰라. 지 순결 뺏겼다고. 엉엉 울면서. 그러면 나 담배라도 피면서 옆에서 책임져 줄게 하고 그짓말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냐? 본론만 하고 짧게 끝내야겠다 싶어 제대로 다리를 벌리고 걸터 앉아 끼워 맞추었다. 크긴 또 졸라 크네- 최대한 긴장하지 않고 느슨하게 하려고 했지만 꽉 들어찬 느낌에 어쩔 수 없이 얼굴이 찌푸려진다.
“리슈… 아퍼…. 힘 좀 빼!!”
“씨발 니가 박혀 보든가!! 아, 아, 아야…. 너, 흐, 가만 안 있음, 으으… 죽어 새끼야…….”
“하… 리슈……. 조여….”
“음, 으, 으, 안, 조이면, 하… 그게, 으……구멍, 아, 아아, 이냐… 아, 아으-.”
제발 떡 칠 때는 좀 조용히 닥치고 열중하잔 말이다. 한경이 온 후로 통 여자나 남자를 만나지 못 해서 자제가 안 들어 먹힌다. 섹스하면서 이성 찾는 것도 좀 웃기는 얘기긴 하지만. 허리를 흔들고 엉덩이를 이리저리 돌려 보아도 어디 처박힌 건지 꼭꼭 숨어버린 성감대 녀석이 도통 안 찾아진다. 아, 이럼 진짜 좇 되는데…. 실컷 박히고 즐기지도 못 하면 그거야 말로 병신 같은 짓이잖아! 애쓰고 있는데 숨이 풀렸는지 한경이 느슨한 눈동자로 올려다 본다.
- 섹시하네?
무슨 말 하는 거냐고 되묻기도 전에 침대에 몸이 푹 꺼져 들어갔다. 들쳐 올려진 다리 사이로 눌리는 몸 무게에 무슨 조치도 못 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팔 사이에 가둬놓고도 숨소리가 닿을 정도로 접혀진 몸에 반항조차 할 수 없다. 희미하게 보이는 시야에 천장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만세- 겨우 찾았다. 미친 듯이 환희에 떠는 몸에 머릿 속은 새하얗게 비워진다. 지금 내 위에 누가 있는지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한경이의 목에 매달려서 누구에게도 준 적 없는 교성을 마음껏 질렀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한경인 정말로 머슴이었다. 그것도 돌쇠보다 센 놈. 다음날 아침까지 마님이 된 기분으로 쌓인 욕구를 마음껏 풀 수 있었다.
**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가슴팍에 화들짝 놀랬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지 기억해냈다. 김려욱 단(순)무(식)지(랄) 새끼야- 그래 한 것 까진 좋았는데 앞으론 어쩌면 좋지. 까딱 기범이한테 이 녀석이 일러바치기라도 하면 그 승질에 날 또 얼마나 볶아댈지. 이게 다 어제 치헤 때문이야!! 발정난 개새끼 진작에 알아봤어야 했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려고 아무리 애써봐도 이 상황을 정리할 말이 생각나질 않는다.
아냐…. 그래도 한경이도 즐겼잖아. 그럼 좋은 거 아냐? 그보다 오늘 학교 쉬어야겠네. 말단이라 안 그래도 구박 장난 아닌데. 부장님 나 잡아 먹는 거 아냐, 이거? 옆에서 태평하게 자고 있는 녀석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니 잘 생기기긴 진짜 잘 생겼다. 어떻게 이런 얼굴이 뚝 떨어져서 태어나고 자랄 수가 있었을까나. 내 쪽으로 돌린 몸 방향에 역방향으로 진 햇빛에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쌍커풀에, 남자답게 높은 코에, 입술까지 완벽하다. 정말 미친 미모야. 학교 애들이 미친 미모, 미친 미모 하는 연애인들 부럽지가 않은 얼굴이다.
“흠….”
미간을 찌푸리며 마저 내 쪽으로 뻗어오는 팔에 잘 자란 근육들까지. 그대가 진정 퍼펙트맨. 한참 얼굴 구경하면서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는데 땅바닥에서 미친 듯이 드드득 거리는 핸드폰 진동에 깜짝 놀래 떨어졌다. 바퀴벌렌 줄 알았네. 그 바람에 잠이 깨려는지 눈을 비비는 녀석을 내버려두고 핸드폰을 집으니 김곰이다. 왜 이 새끼는 부장님도 안 하는 전화를 나한테 하는 걸까?
“여보세-“
[“왜 학교 안 나와 멍청아!!!!”]
“열 살 많은 형한테 입버릇 좋네?! 어디서 멍청이래!!”
[“씨발 목소리 봐. 완전 퍼질러 잤어, 퍼질러 잤어!! 왜 안 나오는데!! 뭐야!! 무슨 일 있는 거지! 그렇지!!”]
그러면 니가 어쩔 건데 빙구야.
“끊는다. 빠이.”
[“악!!!!!!!!!!!!! 나오기만 해봐!!”]
탁- 핸드폰 플립을 경쾌하게 닫아버렸다. 부장님 잔소리만도 끔찍해 죽겠는데 내가 왜 니 잔소리까지 들어야 해. 부재 중 문자를 확인해 보니 기범이가 학교에서 결근했다 길래 아프다고 핑계 댔다는 문자가 보였다. 평소엔 쓸모 없더니 이럴 때 한 건 해주는 구나. 시간을 보니 아침이 아니라
“깼냐?”
“찰 잤어? 어제는-“
“아- 미안미안. 내가 너무 쌓여서 그랬어. 일부러 너 괴롭히려는 생각은 없었어. 암튼 미안하게 됐다. 응? 그런데 나 어쨌든 남자니까 애 걱정하지 말고…”
“…왜 크렇게 말해?”
“어? 아아니- 그러니까 실수였다구. 미안해. 정말 미안. 내가 다음부턴 알아서 잘 조절할게. 그냥 미친개한테 한 번 물렸다 치구-“
“……Is that all? (그게 다야?)”
얘는 또 왜 영어를 하고 난리야. 대뜸 심각해지는 분위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상황에 한국어로 말했다면 웃으면서 넘기기 딱 좋았는데 영어를 쓰니 어찌해야 하나 난감하다. 아까 전까지 순한 토끼처럼 잘 자고 있던 얼굴에 미간이 확 찌푸려진다. 아씨, 뭐 어쩌라는 거야? 저도 즐겼으면 끝이지. 너도 즐겁고 나도 즐거웠으면 그걸로 끝 아니냐고.
“- Take a rest. I go out for a while. (쉬어. 잠깐 나갔다 올게.)”
“무, 머-….”
쾅, 하고 들리는 현관문 소리에 얼이 빠져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가 뭐 기분 나쁘게 한 거라도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했던 말 하나하나 되짚어도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어쩌란 말야.
“뭐야 진짜!!!!!!!!”
**
대뜸 머리에 흰 야구모자만 푹 눌러쓰고 츄리닝 차림으로 카페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확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씨발 개기범 나쁜 새끼. 내가 이래서 학교 근처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 불러. 무슨 이유든 족발을 쳐 버리겠다고 이를 뿌득 갈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일그러뜨린 허연 얼굴이 보였다.
“노총각 티 좀 내지마. 진짜 싫다. 어떻게 학교 근처를 와도 이러냐, 사람이?”
“됐고, 용건.”
“하여간 승질 드러운 거 하고는. 형 한경이랑 잤다며?”
“풉-!!! 뭐!?!!”
들이키던 냉수를 확 뿜어내니 그대로 얼굴에 맞은 기범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다. 저거 재우려면 도대체 이번엔 뭘 사줘야 하는 거지. 저저번엔 CK 향수였고 저번엔 리바이스였는데 이번엔 또 뭘 달라고 하려나. 후- 끝까지 안 듣는 게 미래 저축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일어나려는데 대뜸 휴지로 얼굴을 닦아낸 녀석이 앉으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깨갱하고 앉아야만 했다.
“내가 형이 그럴 줄 예상 못 한 건 아니었지만, 어떻게 깐 거야? 진짜 대단하다~.”
“에? 아니야. 내가 박혔는데.”
“진짜? 근데 왜 그 새끼 표정 졸라 우울한 거야? 지가 박았는데 우울할 수도 있나? 이해가 안 되네.”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 네가 좀 어떻게 해봐. 그 날 이후로 완전 숨막혀 죽겠다구. 내 집인데 내가 투명인간처럼 살아야겠어? 치헤만 끼고 도는데 요샌 나만 죽을 판이라구.”
“치헤? 그게 뭐야?”
“있어. 개새끼 이름. 어디서 하나 주워 와 갖고, 완전 상전이라니까. 야, 이건 너만 알아야 되는데…. 나 사실 치헤가 거기 눌러서…… 그래서 그만….”
“허… 이젠 아주 개새끼하고도 밤일을 하는 모양이구나. 하긴, 형이 사람이 아닌 건 진즉에 알았지만 개새끼하고도 즐길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설마 개새끼한테도 깔린 건 아니겠지?”
근데 지금 이거 카페에서 말 해도 되는 내용인가? 가뜩이나 조용한 카페에 깔리는 클래식 음악과 흘끗 거리는 여자들의 눈빛을 보고 모자를 더욱 푹 눌러썼다. 다신 여기 안 올 거야, 젠장. 대답을 못 하자 기범이가 어이없다는 식으로 또 한숨을 푹 쉬더니 머리를 벅벅 긁고 테이블에 고개를 박는다. 유리 테이블인데, 깨지면 네가 변상해라… 또 나한테 떠넘기면 죽여 버려야지.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니 조용한 거실에 초침소리만 째깍째깍. 튀어나와서 나에게 달려들어야 할 치헤가 없다. 한경이가 데리고 자나? 이 시간에 벌써-? 오늘은 꼭 사과하려고 했더니. 어쩔 수 없이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셨다. 그 날의 상황을 다시 정리해도 고등학교 이후로 공부하고 담쌓은 머리는 아무 해답도 내질 못 한다. 대학교 때 공부 좀 할 걸 그랬어. 지금 직장도 낙하산이잖아 씨발…. 그러고 보면 제대로 한 일이 하나도 없다, 나는. 어릴 때도 대충대충, 어떻게든 되겠지, 귀차니즘의 노예였고, 세살 버릇 여든간다는 그 말 꼭 그대로 지금도 귀찮은 일은 참지 못 한다. 참는 것 자체가 나하고 안 맞는 이야기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꼭 해야 되고, 하고 싶은 일 있으면 해야 되고, 갖고 싶은 거 있으면 가져야 하고.
달칵 열리는 문에 나오는 그림자가 부엌 빛에 드러났다. 요 근래 늘 무표정만 보고 있다. 예전에는 매일 웃는 얼굴이었는데, 어쩌다가 내가 한 번 섹스 좀 한 거 가지고 꽁해지긴.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무섭냐구. 같이 사는 사람이 무표정한 것 가지고 왜.
“왜 울고 크래.”
“몰라 씨발아.”
“……술 크만 마셔. 늙었으면서.”
“그래 나 나이 많다. 너는 안 늙을 거 같냐?! 지금은 막 달려도 너도 나중엔 나랑 똑같애, 바보야!!”
“귀엽네.”
맥주 한 캔 밖에 안 마셨는데 이건 무슨 밤 중에 도토리묵 찾는 시츄에이션이래. 찹쌀 떡도 아니고 메밀묵도 아니고 도토리묵 찾는 소리. 정말 쌩뚱맞다. 하지만 오랜만에 보이는 미소에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의 목에 매달려 울었다.
씨발아, 나쁜 놈아, 진짜 무서웠단 말이다…. 온갖 욕을 해대며 우는 나를 토닥여주는 품에 계속 안겨 있고만 싶다. 하지만 내가 정말 네 품에 계속 안겨 있어도 좋을까? 물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 그러고 나는 선을 긋고 도망가고 싶었는데 잡혀 버렸어. 그가 내 공간에, 들어와 버렸다.
**
한 번 한경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통제하는 의지는 아무 쓸모도 없이 정복당하고 말았다. 그의 눈빛에, 그의 목소리에, 그의 손짓에,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니는 자신을 느꼈다. 그게 싫어서 죽어라 매달려 보았지만 불안감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아무리 그의 품에 안겨서 희열을 느끼고 오르가즘을 느껴도 막상 다음날이 되고 언젠가 그가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나’라는 김려욱이 조금씩 망가져갔다.
쿨한 사랑을 한다고 생각했다. 철없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게 멋있다고 믿었다. 여러 번 했던 사랑에서도 상대방이 나를 버리건 내가 떠나건 슬퍼하지 않았다. 새로운 상대를 찾으면 그만이었으니까. 세상이 넓고 사람이 많은데 어느 한 사람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우스워 보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우스운 짓을 하고 싶어서 매일매일 강렬한 유혹에 휩쓸렸다.
한경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설사 나를 위해서 내 곁에 있는다고 해도 여러가지 사정을 생각해 봤을 때 어떤 선택도 부정적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아파하느니 불같이 시작한 사랑답게 불처럼 꺼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게 힘들다. 나는 지금 그를 잊을 자신이 없다. 그 없이도 전처럼 웃으며 지낼 자신이 없다.
“비 오네-….”
“우산 안 가져 왔지? 이거 써.”
뭐야- 하고 돌아보니 김곰이 우산을 내밀면서 히죽 웃고 있다. 네 꺼는?- 멀리 규현이를 가리키고 다시 나를 보며 헤죽 웃는다. 어린애답게 나 좋다고 쫓아다니더니 어느새 규현이하고 둘이 잘 됐는지 난 신경도 안 쓰는 김곰이. 어떻게 또 내 생각을 해 냈을까, 이 놈은? 하지만 그닥 우산을 빌려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참 부럽다-….”
“어?”
“그냥.”
요즘 들어 변덕스런 날씨는 결국 애꿎은 비를 토해냈고 영운이가 쥐어주는 우산도 마다하고 고집스레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김곰이 부럽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순간을 사랑할 수 있는 그 열정이 부럽다. 나이가 먹으면 자연스레 어른스러워지는 줄 알았지만 그건 사실, 나이를 먹은 만큼 어른스러운 행동을 억지로 선택하는 지도 모른다. 마음이 가는 길을 버리고서. 문을 열자 환한 거실에 아무도 없다. - 이런 순간에 조차 나는 불안을 느끼는데, 어떤 선택을 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화장실 문이 열리자 치헤가 뛰쳐나와서 털을 부르르 털고 있는데 그 뒤로 한경이 나왔다.
“어라- 리슈. 비 맞고. 나 부르지. 길 가르쳐 주면 데리러 가.”
“흐-…”
신발만 벗고 젖은 옷을 벗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의 품에 매달렸다. 여러 번의 사랑을 하고 나면 사람들은 성숙해진다고 그랬지만 그건 다 거짓말이다. 나는 지금 첫사랑보다 더 강렬하게 그를 원하고 있는데. 무작정 얼굴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따뜻한 느낌에 안도하던 기분을 짓누르고 다시 덮쳐오는 불안한 생각에 울음을 멈출 수 없다. 이토록 간절하게 원하고, 이토록 바라는데, 그런데 지금 내 곁에 남은 건 그가 아니라 지난 사랑이 가르쳐 준 이별의 예감뿐이라는 것이 서럽다. 김려욱은 헛똑똑이다. 쿨한 인간도 아니고 멋진 인간도 아니다. 지금 곁에 있는 단 한 사람만을 원하는 바보일 뿐이다.
겨우 진정하고 샤워를 한 후 침대에 앉자 한경이가 김이 나는 우유를 들고 들어온다. 수건으로 얼굴을 일부러 가리자 협탁 위에 컵 소리가 들렸다. 앉은 옆 자리가 눌려진다 싶더니 수건을 뺏겼다. 짐짓 화난 얼굴을 금새 풀고서 머리를 쓸어 넘겨주며 무슨 일이냐며 묻는 다정한 목소리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 나 안아줘, 한경…. 안아줘….”
알겠다는 듯 눈웃음을 살며시 짓고 끌어 당기는 손에 신경질을 냈다. 처음 그 날처럼 내가 위에 올라타자 한경이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지만 이미 내 손은 가운을 벗어 던졌다. 그의 옷을 벗겨내야 하는데 손이 떨려서 할 수가 없다. 결국 그의 얼굴 옆에 얼굴을 묻고 꺽꺽 울었다. 한경은 아무 말없이- 내 등을 아이 달래듯 만져줄 뿐이었다.
**
환송회 가야 된다는 기범이의 반대를 무시하고 억지로 한경이의 팔을 잡아 끌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바락바락 소리 지르는 기범이에게 치헤를 부탁하고 핸드폰을 꺼버렸다. 밤 기차에는 연인 몇 명과 가족들 외에 조용했다. 집에서 기차를 탈 때까지, 그리고 목적지 역에 도착하고도 말이 없던 우리는 무작정 걷다가 택시를 타고 바닷가에 도착했다. 아직 이른 철임에도 텐트 몇 개들이 보였다. 한껏 바다 냄새를 느끼는데 어깨를 끌어안는 손에 올려다보니 웃고 있다.
그는 웃음이 잘 어울린다. 이 웃음도 며칠 후면 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새삼 그와 사진 한 장 찍어두지 않은 것이 아쉬워졌다. 짧은 불 같은 연인이기에 추억을 남겨두지 않는 게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아무 가게나 들어가 평소라면 절대 사지 않을 가격의 일회용 카메라를 사고 말았다. 한경이만 찍어서 필름을 다 날렸다. 어두워서 몇 장이나 제대로 나왔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를 남겨두고 싶은 내 소원은 이뤘다.
같이 발끝에 채는 모래 위를 밟으며 걷다가 물을 발로 튀겼다. 몇 번 발장난을 하다가 웃다가 마른 모래 위에 앉아서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리슈, 나… 돌아올게.”
“그러지마.”
“왜-.”
“나 때문에 돌아오진 마.”
“왜….”
“그러면 내가 정말 널 잡아먹을지도 모르거든….”
“푸-…. 리슈 식인종?”
“경아, 한경….”
목덜미에 고개를 고집스레 묻었다. 그의 모든 것은 이제 며칠 후 지워내야만 한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으니까. 널 내 품에 묻어버리면 내가 죽어버리고 말아. 미안해. 품에 안지조차 못 하는데, 사랑하게 만들어 버려서. 그러니까 너도 날 잊으면 돼. 그러면 우리 쌤쌤이야. 나도 너 내 머리에서 내쫓고, 너도 나 잊어버리면 돼.
마음이 지울 수 있을지 몰라도…, 지워야만 해….
울지 않겠다고, 이제까지 그랬듯이 나는 널 쿨하게, 멋있게 보내 줄 수 있다고 믿었는데. 학습 능력 없는 바보는 또 울고 만다. 이건 바보가 우는 거야. 김려욱이 우는 게 아니고. 알아 듣지도 못 할 말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한경이 알아듣지 않길 바라면서 바닷가의 쓸려나가는 모래알처럼 내 기억 모두 씻겨버리기를 바랬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일회용 카메라를 잃어버렸지만 되찾지 않았다.
**
“
“아씨,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너도 낙하산이라면서 왜 나한테만 그래!!”
“네가 일을 못 하니까 그렇지!!”
“꺄- 려욱씨이~.”
컥. 김선생님. 요즘 재즈댄스를 배운다더니 문을 쓸어 내리며 마릴린 먼로의 흉내를 낸다. 이제 곧 결혼하신다고 청첩장까지 보내셔놓고 지금 그게 뭐 하는 짓이에요. 작년에 영운이가 대학교 졸업한 후로 취직할 테니 학교에 안 찾아올 거라 생각해서 좀 조용해지는가 싶었는데 하필 이 새끼가 행정실에 취직하는 바람에 좇됐다. 덕분에 매일 들볶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쪽은 섹시 공격에 한쪽은 욕질 공격. 이러고 내가 살아야 되나? 문자음에 핸드폰을 꺼내보니 가관이다.
[형 보고 싶다. 나 신발 떨어졌어. –기범]
이런 시밤새…. 꼭 돈 없는 말단 공무원의 코 묻은 돈이 쓰고 싶냐? 저번에 물으니 ‘응, 짜릿짜릿해서 죽을 것 같아-‘라는 녀석의 뒷통수를 내리쳤었지. 반짝 유학파라고 나름 외국계 기업에 취직했다는데 왜 개기범의 물주는 나여야만 할까. 문자에 답하지 않으니 결국에는 학교 찾아가겠다는 협박으로 울며 겨자먹기 약속을 잡았다. 정말 이 새끼는 나하고 한 피인게 통곡하고 싶을 따름이다. 너 왜 나하고 같은 성이냐. 확 조씨나 해 버리지.
어쩔 수 없이 카페에 도착하니 기범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개기범 새끼, 지 원하는 거 있을 때만 내가 형이고 내가 중하지? 욕을 구시렁거리며 다가가 맞은 편에 앉았는데 누군가가 이미 앉아있다. 인사를 하려다 말고 입이 굳었는지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 이번에 새로 온 중국 쪽 영업부장님.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실 곳이 없으시다네. 형도 아시다시피 서울 물가가 살인적이잖아? 그래서 형한테 쫌~ 부탁할까 싶어서.”
“씨발아….”
“- 오랜만이네.”
“내가 오지 말랬잖아… 나 때문이면 오지 말랬잖아 씨발아!!!”
버럭 소리를 지르고 바로 빠져 나와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왔다. 아파트에 바로 도착해서 층수를 누르는데 후다닥 뛰어 들어오는 인영에 닫힘 버튼을 누르는 것도 깜박했다. 젠장- 진작 닫는 건데. 이를 갈며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층수만 바라보는데 땡- 문이 열리자 마자 집으로 뛰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치헤가 뛰어나오며 재빨리 한경에게 안긴다. 씨발 개새끼. 내가 6년 동안 돌봤는데 꼴랑 4개월 같이 있던 놈을 더 반기냐?! 올해 복날에 진짜 팔아 치워 버려야지, 나쁜 개새끼 같으니.
“치헤, 안 버렸네….”
“- 복날에 팔 거야!!”
“리슈. 나 리슈 때문에 한국 온 거 아냐.”
“……아, 그래?! 그럼 빨리 가 버려!!”
치헤를 쓰다듬던 한경이 놈이 개새끼를 품에 안고 일어선다. 와씨, 진짜 치헤 때문에 온 거야?! 꼴랑 그 개새끼 찾으러?!! 6년 만에 봤는데 개새끼가 더 중요해?! 바락 소리를 지르려는데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나 때문에 우는 바보 찾으러 왔어….”
“-흑…. 씨발, 졸라 나쁜 새끼야…….”
무작정 품에 안기니 사이에 끼인 치헤가 아프다고 낑낑거린다. 그러길래 누가 남의 서방 품에 안겨 있으래. 넌 찡겨 죽어도 돼. 복날 팔려가서 죽는 것보단 낫잖아!
분명 그때 짧은 열병으로 스치는 인연에 끝날 거라 믿었던 사랑은 다시 곁에 돌아왔다. 여전히 사랑에 어린애에 멍청이인 김려욱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나는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집에 잘 돌아왔어, 머슴 새끼야.”
“그래, 바보 마님.”
(에필로그)
컴퓨터 메일을 확인했다. 새로 받은 메일함을 보니 기범에서 온 것이다. 저번에 말했던 자신의 물주라며 의기양양한 말투에 피식 웃음이 났다. 어떻게 친척 형을 괴롭히는 걸 저렇게 자랑스럽게 말할까? 가끔 한국의 문화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기범 자체가 특이한 것 같기도 하지만.
스크롤을 내리자 여름에 찍었는지 물장구를 튀기는 사람들 사이로 환하게 웃는 얼굴이 보였다. 사진으로만 봤지만 그 즐거움이 가득한 얼굴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 밑으로도 여러 장의 사진이 있었다. 기범이 추하다며 비웃는 사진에서 그의 친척 형은 세상 모르게 잠에 빠져있었다. 아직 어린 다른 사촌 동생과 찍었다는 사진은 어른스러우면서도 소년적인 매력이 가득했다. 분명 자신들보다 4살 가량 많다고 했던 것 같은데.
한경은 기범에게 답메일로 이번 학기에 한국에서 유학을 할 예정인데 그의 친척 형의 집에서 살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적었다. 예의가 아닐 것 같아 몇 번이나 망설이고 겨우 ‘SEND’ 버튼을 눌렀을 때 기대도 안 했던 긍정의 대답에 비행기를 타면서도 눈 한 번 제대로 감을 수 없었다.
“씨발, 이 새끼가 장난해?!???? 뭐라고!!!!!”
…물론 처음 사진을 봤을 때 생각했던 일반적인 의미에 착한 사람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는 걸 느껴야만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경은 려욱이 자신의 마지막 사랑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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