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란에 도대체 몇달만에 업로드인지 이제 기억조차 까마득하네요. 스페셜 편이 아마 작년 기범이 생일 축하 기념이었으니까...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재해의 연극은 의외로 손이 많이 가서요. 요새 뭐 혼이니, 불신지옥이니 이런 거 보니까 그런 내용을 넣어버리고 싶었지만 고등학교 연극임을 감안해서 퓨어하게 (;;;) 쓰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성민씨가 작곡, 혁재씨랑 동해씨가 연기, 려욱이가 작곡, 기범이가 연기. 이거 뭔가 묘하게 이상하지 않아요? 나만 그런가...
아무튼 앞 내용을 별로 읽어볼 필요는 없는 4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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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Etude~op.4~
혁재는 끝에서부터 천천히 걸어오는 동해를 보며 귀에 꽂았던 이어폰 중 한 쪽을 뽑았다. 평소라면 틀림없이 웃어 보였을 혁재였지만 무표정으로 동해가 걸어오는 것을 쳐다보았다. 그런 표정에 아랑곳없이 걸어온 동해는 소파 위 혁재의 옆자리에 앉아 혁재에게 기대었다. 움츠리듯 앉은 동해를 힐끗 내려다본 혁재는 뽑혀진 이어폰을 가져다 끼우는 동해를 내버려두었다.
“괜찮아?”
“……”
뭐가 괜찮은지 묻는지 모르는 게 아닌 듯 동해는 여전히 혁재의 팔에 기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와….”
혁재는 기댄 팔을 뻗어 동해를 자신의 안쪽 어깨에 기대게 했다. 동해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는 혁재를 올려다 본 동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
XX 진짜 X 같아서 못 해먹겠네-!!!!!!!!!!!!!!!!!!!!!!!!!!!!!!!!!!!!!!!!!!!!!!!!!!!!!!!!!!!”
“컷! 야- 이동해! 자꾸 엔지 내지 말랬지!!!!!!! 혁재 반만큼만 해라!!!!!!!!!!!”
“낸들 알아?! XX 뭐 이런 XX XX같은 대본을 만들고 XX이야!!!!!! 내가 왜 이걸 해야 되는 건데?! 야이 변녀집단!!!!!!!!!!!!!!!!!!!!!!!!!!!!!”
“시끄러. 누구 땜에 자꾸 재촬영인데. 한마디만 하면 된 댔잖아. 한마디! ‘혁재야…’ 이 한마디 애틋하게 하는 게 그렇게 힘드냐!!!!!! 어차피 연극하고는 상관없는 티저일 뿐인데!!”
“티저라서 더 못 해 먹겠다 날 죽여-!!!!!!!!!!!!!!!!!!!!!!!!!!!!!!!!!!!!”
“넌 혁재한테 미안하지도 않나?!!!!!!!!?????? 너 때문에 같은 대사를 몇 번 치는 줄 알아?”
결국 총감독(겸 카메라감독 겸 조연출 겸 연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혁재의 팔을 붙들었다. 그런데 평소라면 이미 나서서 동해를 비난해야 할 혁재가 얌전할 뿐 아니라 얌전히 붙잡혀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 돌아보니 그곳엔 혁재가 아니라 이미 혼이 빠져나간 시체 상태인 껍데기 혁재가 있었다.
“악 XX!!!!!!!!!!!!!!!!!!!!! 진짜 못 해먹겠어!!!!!!!!!!!!!!!!!!!!!!!!!!!!!!!!!!!!!!!!!!”
**
“그러니까 내가 이딴 대본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잖아.”
“개폼 잡고 있네.”
“……”
기범은 자신이 어째서 이 와중에 서 있어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루의 수업이 끝나고 개인연습시간이 주어진 터였다. 2학년 선배들이 준비하는 연극을 보러 가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오늘 분량의 연습을 끝낸 아이들끼리 의기투합을 하게 되었다. 돌아가서 쉬고 싶은 아이들은 빠져도 좋다고 했지만 이번 연극의 주인공이 재해인데 누가 그런 아까운 짓을 선택할까. 당연히 기범도 함께 끼여서 강당으로 행차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니 목표였던 재해는 당분간 연습하지 않는다는 통보만을 받았다. 결국 남은 아이들끼리 구경이라도 할 셈으로 남아있다가 슬슬 려욱을 데리러 가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강당 밖으로 나오자 강당으로 올라오는 계단 구석에 앉아있던 동해와 눈이 맞았다. 결국 복날 개 패듯이 맞을 것이 두려웠던 기범은 순순히(X)->질질(O) 매점으로 끌려가던 중 마침 3학년 야자 쉬는 시간과 맞은 덕분에 평소에는 교실에서 의욕을 불태우는 성민과 만나 극적으로 구해진 터였다.
려욱이를 데리러 가야 된다 했드니 성민이 벌써 전화까지 끝내버린 상태라 기범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성민과 동해의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팩 우유를 빨대로 빨며 남은 팔을 벤치 뒤에 걸치고선 쩍벌남처럼 다리를 쫘악 벌리신 동해가 앉아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성민이 왔다갔다 거리며 그럴 줄 알았다며 신경질 겸 잔소리 스킬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고3… 누가 공부에만 매달리는 시기랬나. 매달려야 하는 시기일 뿐. 학교 내의 가십거리는 모두 쓸고 다니며 공부만 아니면 뭐든 다 즐거운 시기가 바로 고3이라지요. 덕분에 성민은 최근 핫이슈(…)로 꼽히는 재해의 연극 부재를 알고 있던 모양이다. 사기와 공갈이 적절히 믹스된 아주 멋진 소금구이 대하 같은 스토리였다.
사건의 전말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대본을 받고 꼼꼼히 읽으며 준비하는 타입의 혁재와는 달리 동해는 닥치면 읽고 캐릭터 구상을 하는 편이었다. 대본 리딩 전 혁재가 동해에게 이번은 반드시 읽으라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은 동해는 되려 그 즈음 혁재가 대본 수정을 요구하는 데 신경질만 냈었다. 덕분에 평소에도 싸우기 좋아하는 재해는 틀어져 버렸고, 결국 동해는 1차 대본 리딩까지 전~혀 내용에 대해 파악이 되지 않아 정말로 다른 선생님들 말처럼 ‘그냥 평범한 쌍둥이 형제 자매들의 이야기’인 줄 안 것이다.
“씨발. …내가 못 할 줄 알아? 못 할 것 같아서 이 지랄하는 거지? 할 거야. 할 수 있어!”
“…이동해.”
“왜?! 내가 왜 못 해?!
“…너 무대에서 발작 안 할 자신 있어?”
“-!!!!”
성민의 말에 동해가 입을 다물었다. 그 1차 대본 리딩 도중, 동해는 대사를 갑자기 치지 못 했다. 게다가 아무리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이 안 나오는지 당황하다가 결국 혁재가 안아준 후 겨우 진정되어서 재해의 일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가십이 되는 학교에선 이미 둘이 금단의 사랑을 하는지 의심받는 지경까지 가고 있었다.
기범은 급히 메모리를 정리했다. 그러니까 이번에 하는 연극의 내용이 정확히 뭐였더라…?
“쌍둥이 형제가 있는데 동해 형이 맡은 역이 실수로 사촌 동생을 위험에 빠뜨렸는데, 그것 때문에 사촌동생이 죽은 후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는 엮이었죠? 그래서 혁재 형이 구해주는… 음, 그리고 홍주는 아마,”
“구한단 표현은 쓰지 말아줄래? 토나와….”
“어지간히 싫으신가 봐요.”
“그 자식한테 구원 받는다니 그 자체로 저주다.”
“그러길래 혁재가 그렇게 읽어보라 할 때 괜히 오기 부려선.”
“아 시끄러! 내가 한다면 하는 거야! 이딴 대본 따위, 아무 문제도 아냐!”
결국 소리를 버럭 지르며 도망치는 동해의 뒷모습을 보면서 기범은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이 정도로 솔직하면 ‘알아주세요’하는 거나 다름없다. 동해는 확실히 두려워하고 있다. 연극의 내용이 어딘지 모르게 실제의 혁재와 동해를 닮은 것은 알 수 있다. 노리고 쓴 대본이다. 악질이다. 기범은 그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어금니가 꽉 물렸다.
“… 기범아.”
“네?”
“려욱이한테 대본 내용 말하지마.”
“………예?”
“알면, 이동해도 김려욱도, 안 돼.”
“아, 하지만….”
“집안일이니, 양해해줄래? 저대로는 아무것도 안 되거든.”
“………….”
성민의 억지스런 웃음에 기범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성민이 이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해 온 것은 처음이다. 또한 이렇게 직접적으로 자신을 차단한 것도.
종이 울리고 기범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민은 기범이 확실히 긍정의 표시를 한 후에야 돌아갔다. 뭔가… 안 좋다. 그것도 심각하게.
기범은 약간 당황했다. 그도 그럴게 이 방에 불편한 1人인 누군가가 친히 행차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이야. 도저히 내가 못 해먹겠다 이거야. 진짜. 려욱아 어떻게 그딴 티저를 찍을 수 있어? 게다가 여주인공은 코 빼기도 안 보이는 완전 개쌩구라 사기라고!”
네… 그치만 형. 이제 곧 취침시간이에요. 불이 켜져 있으면 선생님께 혼난다고요.
“그래서?! 너 지금 날 쫓아내겠단 거야?!???? 연극계에서 발 떼고 싶냐?!??????????”
손이겠죠, 형…. 그리고 제가 쫓아내고 싶은 게 아니라 내일 수업도 있으신 분이 이렇게 다른 사람 방에 들어오시는 건 안 좋다고 말하는 거에요. 제가 감히 하늘과 같은 선배님께 어찌 내쫓는 그런 망측한 짓을….
“그만해, 형. 이리 와서 누워.”
“………………………………….”
“뭘 봐? 불 안 꺼, 새꺄?!”
“네, 네. 끕니다요.”
“?????????????????!!!!!!!!!!!!!”
헉. 실수로 진심을 말해 버렸다. 갑자기 꺼진 불에 눈앞이 깜깜해져 앞이 보이진 않았지만 동해의 발끈한 목소리 바로 닥쳐왔다.
“너 무슨-?!??????”
“형…. 나 졸린데….”
“응…….”
기범은 살금살금 사다리를 타고 2층 침대 위로 올라갔다. 려욱이 아니었으면 진짜 let die. 하지만 불을 끄기 전에 봤던 그 광경을 생각하면 절로 기분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최근 박차를 가하고 있는 6월의 연극은 사춘기 형제와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이미 캐스팅은 재해와 딱히 언급하지 않아도 알만한 여성 두 분이 당첨되었다. 대본 문제는 이미 앞에서 마른 돌이 닳을 정도로 설명했으니 패스. 어쩔 수 없이 티져만이라도 찍자, 했으나… 며칠 전 티저 촬영에서 돌연 거품 물고 뒷목 잡으며 쓰러질 만한 일이 있었던 게 문제라고 해야 하나….
늘파란예술고등학교(…)에서 무려 5대 명물 중 하나에 속하는 게 재해쌍둥이임을 누구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악행(…)으로 이미 충분히 주변 고교와 중학 및 초등을 넘어 유치원에 진출 준비 중이란 소문이 도는데. 주인공을 결정하는 테스트에서 선생님들이 단순히 티켓의 판촉을 위해 재해 쌍둥이를 캐스팅할 정도니 의외로 생각보다 쬐그만 이 도시에선 재해는 뭐랄까… 아무튼 유명인사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아무튼 주인공이야 여차저차 됐다 치더라도 그걸 고이 봐줄 애들이 과연 늘파란예술고등학교에 존재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면 대답은 당연히 No. 예술계는 인맥이 그야말로 JESUS이므로 함부로 선생 심기를 건드릴 짓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심술은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장난’쯤으로 처리했다. 재해 또한 그런 걸 건드릴 정도로 속 좁은 아이들은 아니었고(…라기 보단 단순히 받으면 최소 배로 갚기 때문에 다들 피하는 것 뿐).
아무튼 이로 인해 선생님들도 홍보 영상쯤은 학교의 위상에 해가 가지 않을 정도 내에서 자유롭게 찍는 것을 허락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면 이 고교에 존재하는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은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할 정도로 매력적인 기회였다. 당연히, 단순한 홍보영상의 시나리오에도 벌떼 같은 미래의 여작가들이 응모했고(때로 남작가들도 있었…) 평소 말썽 부리는 재해를 위한 선생님들의 선물 겸 홍보영상의 시나리오가 바로 동해가 그토록 광분하며 욕질을 일삼게 하는 근원이었다.
근친 어필. 이라면 말이 쉽나?
덕분에 촬영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혁재는 패닉으로 연기를 할 때가 아니면 거의 넋 나간 상태다. 급기야 동해가 그걸 받아들이는
이제 4개월째 접어드는 재해 쌍둥이의 짓거리라면 이골이 날 지경이니까.
그런데 왜
기범은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며 허공으로 발길질을 날렸다. 지금 아래 침대에선 동해의 품에 안기다시피 하며 자고 있는 려욱이 있을 것이다. 오오 그렇게 동생을 끔찍이 생각하면 그 좁은 1인용 침대에서 둘이 낑겨 자는 괴로움을 더 배려하는 편이 현실적이지 아니한가?!????? 어째서
“……에휴.”
내가 열내봤자 뭐하겠냐. 그렇다고 이동해가 저기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기범은 다시 신경을 끄려 애썼지만 짜증이 다시 차올라 한동안 침대 위에서 몸을 굴려야 했다. 2층 침대의 위쪽임을 감안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한 고교 남학생, 침대에서 떨어져 뇌진탕으로 급사’ 따위의 지방신문 타이틀을 만들어내야 했을 것이다.
**
“려욱아. 아무래도 난 가망이 없는 것 같아.”
“기범아…. 아직 한 달도 안 됐잖아. 설마 너 모든 학원을 그런 식으로….”
“아니. 한달 다니니까 선생님들이 더 등록할까 봐 무서워하시던데.”
“그렇구나….”
려욱은 플룻을 정리하며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범은 오랫동안 서서 분 플룻 덕에 정신이 이미 혼미할 지경이다. 폐활량을 늘리겠답시고 나름 운동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운동을 잘못 선택한 것 같기도 하다. 연극과 선생님들은 “그래, 배우는 발성도 중요하지.”라고 하셨지만 근본 이유가 려욱의 과외 때문임을 아직 눈치채진 못한 듯 보였다. 하긴… 들통나서 좋을 것도 없는 일이지만.
기범은 플룻을 정리하는 려욱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이건 폐활량의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 것 같았으나 애써 속으로 부정했다.
기범은 왠지 싱글거리는 려욱이 약간 야속하게 느껴졌다. 오늘 분량의 수업이 끝나서 좋은 걸까? 아무리 불어도 소리도 안 나는 고고한 플룻이 이젠 오기로라도 널 소리내게 하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거기에 려욱을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오늘 아침 동해가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둘이 얼굴은 안 닮았는데 묘하게 분위기가 비슷한 것도 같고…
“연극부 연습 보러 가고 싶은데. 데려다 줄래?”
“어?! 어?! 그래….”
허둥대며 등을 벽에서 떼며 려욱에게 다가섰다. 오늘 아침 동해가 려욱에게 치근덕거리던 게 생각나 저도 모르게 넋을 빼고 있던 차였다. 려욱이나 동해가 들으면 어이없어 할 만한 이야기지만, 둘이 같이 있으면… 그… 뭐시기냐… 분위기가… 쪼까… 흠흠.
까고 말하면 혁재보다는 훠배 위험한 분위기다. 려욱이 작곡 쪽으로 진로만 안 정했다면 분명 그 미친 미래의 여작가들이 놓칠 수 없을 정도로… 애완견 가게 옆의 영양탕 집 같은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성민이 대본 내용을 알게 하면 안 된 됐는데… 상관 없나. 어차피 연극 날이면 다 알게 될 거고,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역시 재해 쌍둥이와 함께 한 트레이닝의 성과로 자신의 배짱이 두둑해진 것을 자신만 모르는 기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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