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1년 넘은 연작을 들고와서 생일 선물이랍시고 바치는 거냐 라고 하문하셔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크학!!!!!!!!
게다가 왜 민욱인데 시원씨와 종운씨가 이렇게 많이 나오냐 하시면 그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어느새 정신이 나간채 쓰고 있더라고요. 이러면 안 되는데...ㅠㅠ
아무튼 날씨가 이랬다 저랬다 해서 감기 걸리신 분들도 계실 법한데 모두들 몸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Happy new year! 입니다. 다음은 2010년에 나오는 거냐고 물으셔도 드릴 말씀이 없군요. 그때까지 제가 살아있다면 아마 완결이 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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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젊은 선생님이 부임하면 으레 치르는 신고식은 아이들의 쉴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공세다. 정말 궁금해서라기 보단 수업하기 싫은 게 아이들의 진심이지만,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도 초보 선생님의 예의일 것이다. 물론 려욱도 그에 장단을 맞춰주려는 셈으로 아이들의 질문에 씹기 스킬을 발휘하다가, 진도를 억지로 나가기도 하다가, 결국 떠밀려 제 얘기를 해야 할 상황이 닥치면 장기자랑을 시키곤 했다. 그러면 대개 반의 분위기 메이커인 아이가 나와 주도하며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면 수업을 하기보단 더 산만해지곤 했다.
이건… 어째 초등학생 수업도 이보단 집중력이 있겠다 싶을 지경이다. 공학이지만 분반이라 그런지 한번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면 감당이 안 된다. 같이 음악을 가르치는 선배인 선생님은 괜히 일반고 애들 상대로 예체능 선생이 힘 빼서 좋을 게 없다며 려욱을 타일렀다. 하지만 이래서야 선생이 된 의미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어느새 3월의 막바지로 접어든 날짜를 계산하며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전보다 스트레스가 늘어서 일어나는 시간이 당겨졌다. 남들은 잠이 늘어서 고민이라는데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게 되는 업무 스트레스란.
“누나- 누나! 나 먼저 간다!”
“……아우무우우아….”
“도저히 아침이 넘어갈 기분이 아니야. 늦으면 연락할게. 출근 늦지 말고 잘해.”
눈도 뜨기 힘든 효진이 얼굴을 찌푸리며 하는 의성어를 알아들은 려욱이 효진의 침대가로 와서 효진의 얼굴의 머리카락을 걷어냈다. 뺨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바로 거실을 지나 현관문을 나섰다. 려욱이 나간 후 억지로 눈을 비비며 일어난 효진은 인상을 찌푸리고 시계를 보았다.
#. April’s Pride
정류장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오늘은 회식이 있는 날이다. 차를 끌고 갔다간 분명히, 절대로 콜택시가 돼야 할 판이다. 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정말로! 양복을 입고선 한가하게 지나가는 차들을 보았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자신도 저 대열이었지만, 요즘 기름값이 너무 올라서 차 타고 다니기가 힘들다. 이래서야 첫 월급 나오기도 전에 파산이겠다 싶어 대중교통으로 바꿨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돈도 못 받는 콜택시 따위로 려욱은 자신의 차의 금기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몇 주 전부터 버스를 이용한다.
그런데 버스를 이용하고 나니, 등교시간에 맞추면 학교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젊은 교사라고 애들이 얕보는 게 또 장난이 아니다. 웬만해선 큰 소리를 내지 않는데, 한 번은 정말 멱살을 잡을 뻔 했다. 요즘 애들은 부모한테 이르고 난리 피울 수도 있고, 같이 맞짱 뜰 수도 있다. 어쨌든 자신을 어려워하진 않는다. 즉, 괜히 화내서 손해를 보는 건 자신 뿐이란 거다. 이래저래 려욱은 첫 직장 스트레스를 제대로 만끽하는 중이다.
도착한 버스를 타고 한가한 밖을 보다가 같은 학교 학생을 몇 명 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학년이 아닌 건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자리로 가서 앉아 버린다. 눈을 마주치고도 금방 시선을 돌려버린다. 아- 개무시 당하는… 건가. 처음 임용고시를 패스했을 땐, 직장이 생겼단 생각이 신났었다. 솔직히 음대 나와서 다 음악으로 먹고 사는 건 아니니까. 그거야 재능 있고 돈 많은 놈들이지. 평범한 집안에, 농촌으로 귀향한 부모님에, 부자들과는 거리가 먼 회사에 다니는 누나에, 그저 그런 음대를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패스해 공립 일반고에 온 자신…에겐, 음악으로 성공할 지푸라기도 없다. 개중엔 부잣집 마나님 잡아서 성공한 놈들도 있다지만, 남들에게 맞춰주는 것도 1,2년이지. 평생 해야 된다면 속이 뒤집힌다.
그래도… 조금은, 뭐랄까- 청소년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학생과 선생 사이의 뜨거운 열의. 이왕 선생이 될 거면 그런 것도 가지고 싶었는데, 현실은 눈도 안 마주치고 쌩무시하는 학생들이다. 쑥스러운 거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비참해지는 건 왜냐. 어쨌든 슬프다.
“……선도부도 없네….”
어쩐지 날라리 애들이 많이 지나가더라. 일찍 일어난 새가 모이도 먹는 댔지. 척 봐도 염색을 했거나, 머리 길이가 길거나, 귀걸이를 했거나, 반지를 했거나, 교복이 너무 짧거나, 너무 타이트하거나. 아, 그러고 보니 이 학교는 신발주머니도 들고 다녀야 한다. 그래도 아침부터 담배 피면서 등교하는 애들은 없으니까 불행 중 다행일지도 모른다. 담배 피는 애들은 어떻게 단속해야 좋을지 아직 모르겠다. 걔들이 피지 말란다고 안 피는 애들도 아니고 말이지.
교무실에 들어가니 다른 학년의 몇몇 선생님들이 있었다. 간소하게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아 있는데 회의감이 밀려온다. 이래서야 샐러리맨과 다를 바 없다. 수북이 쌓여있는 구역질 나는 검토 서류들. 음악하고는 전혀 관계도 없는 것들이다. 도대체 음악 선생이 음악만 잘 가르치면 되지 서류는 왜 봐야 되는 거야? 그래도 하는 일 없이 출근한단 생각은 안 들어서 고맙긴 한데, 좀 짜증난다. 이럴 바에야 9급이든 7급이든 공무원질 하는 게 더 편하지. 이건 서류도 처리해야 되고, 공문 일일이 쳐서 교감한테 받쳐야지, 신입이라고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수업 들어가면 애새끼들은 말도 안 듣고, 맨날 놀 생각만 해대고, 음악에는 손톱에 낀 때보다도 관심 없는 징그러운 새끼들이 애교를 부려대질 않나!
왠지, 며칠 전보다 다크 서클 면적이 넓어진 거 같은 건- 절대 절대로 착각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사진을 찍어서 증거자료를 만들까 생각하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조용히 외부 계단이 있는 밖으로 나와 받으니 활기찬 목소리에 귀가 아프다.
“역시 우리 천생연분 같지?”
“…….”
아- 여기에 스트레스 원인 하나 추가요.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몸을 틀어 계단을 보니 성민이 3층 외부계단에서 손을 흔들면서 내려 본다. 핸드폰 슬라이드를 콱 내려 닫고 팔짱을 끼고 쳐다보고 있으니 귀에서 핸드폰을 떼고 웃으면서 달려온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꼬리라도 달아주면 열라 흔들겠다. 것도 모자라 뛰어와선 덥석 안는다. 달리기 열심히 했다고 자랑이라도 할 셈인가. 온 몸이 아주 후끈후끈하다.
“신난다. 아침부터 네 얼굴 보니까.”
“웬일이야? 지각을 다 안 하고.”
“아아~ 학교에서 잤거든.”
“… 경찰한테 안 잡혀간 게 용하다.”
“너도 같이 잘래? 의외로 할만 해.”
“미쳤어? 그보다 언제까지 안고 있을 거야? 빨리 안 놔??”
“아- 나 아침 안 먹었는데. 좀 사줘. 응? 선생님.”
이럴 때만 선생님이라고 하지…. 성민이 제가 원하는 바를 말할 때 꼭 덧붙이는 애교 섞인 말엔, 아직까진 귀에 콩깍지가 덮였는지 들어주게 된다. 그래도 학교에 자신을 선생으로 대접해주는 건, 성민 정도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애들은 원체 무리한 요구를 해대니까, 감당할 수가 없다.
“밥 사주면 넌 뭐 해줄 건데?”
“엑-… 키스?”
“됐다. 말을 말아, 말을. 그리고 지금 너 사줬다가 다른 애들한테 들키면? 너만 특별 취급한다고 나만 욕먹어. 어휴~ 진짜 이걸 어딜 보고 25살이라고….”
“아야- 아파~. 으흐흐. 난 밤일 테크닉 수준으로 내 나이를 말했을 뿐인데요.”
“말 다 했어?!”
계속해서 려욱을 끌어안고 있던 성민을 억지로 떼내니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생각할수록 그때 속았던 일이 분해서 성민의 볼을 잡고 흔드니, 이건 말이나 못 하면. 하는 대답마다 이 모양새니 속아도 단단히 속았다. 양 볼을 잡으려고 덤비니 손을 잡고 요리조리 얼굴을 피해댄다. 분해서 계속 덤비지만, 결국 성민이 틈을 타서 려욱의 볼에 가볍게 뽀뽀를 했다.
“야!!!!”
“우와- 선생님, 무서워요~ 왜 그러세요~ 우와~.”
“너 진짜 잡히면!!!!!”
“잡히면??”
“…됐다. 꼬맹이 상대로 내가 뭐하는 짓이람. 가서 공부 안 해?!”
“김선생님?”
일 났다. 발끈해서 지른 소리가 교무실에 울렸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게 정말 열 받았었으니까. 도대체 밤일 기준이면… 뭘 몇 번이나 했다는 건지? 가뜩이나 몇 주 째 이어지는 수업 스트레스에, 업무 스트레스에 성민의 도발은 쥐약이었다. 정작 약 올린 상대는 이미 외부 계단 위쪽으로 올라갔다. 밖으로 나온 선생님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가 성민의 얼굴을 보고 파악이 됐는지 안 됐다는 식으로 웃으며 들어가 버렸다.
…세상에. 도와주지도 않네.
“처음부터 나랑 사귀었음 편했을 텐데.“
“너 자꾸 헛소리 할래?”
“그러다 먼저 사귀자고 하면서 울어도 모른다~.”
“전교 1등을 해 봐라! 사귀기만 해줄까? 스트립 쇼라도 해 주겠네, 이 사람아! 빨리 가!”
짜증이 나서 빨리 성민을 보내버리려는 셈으로 되는대로 말을 뱉었다. 순간 속으로 당황했지만 이미 학교에서 유명인인 성민의 성적은 시원이 하도 떠들어대서 등수까지 외울 판이다. 꼴통도 그냥 꼴통이 아니다. 진짜 제대로 된 꼴통이다. 도대체 얼마나 공부를 못 하나 싶어서 하루는 음악 시간에 성민의 반에 자습을 시키러 들어갔는데 성민이 푸는 문제집이 중학교 문제집이었다. 당장 수능에 닥치고 매진해야 될 고3이 중학교 수학 문제집을 풀고… 고1도 아니고 중학생…. 그것도 성민의 과외 선생님이 빌고 빌어서 시키는 거랬다. 이건 무슨 내 머리 속의 블랙홀도 아니고, 넌 하나도 든 게 없다며 과외 선생님의 푸념을 흉내 내는 성민을 보며 려욱은 ‘너도 참 답 없는 인간이다…’하고 생각했다.
“……진짜?”
“진짜지 그럼. 당장 3월 모의고사 점수라도 가져오던지.”
“나중에 물리기 없기다. 물리기 없기야!”
그리고 뛰어가는 성민의 발소리를 들으며 려욱은 콧방귀를 뀌었다. 해가 서쪽에서 뜨고 동쪽으로 완전히 진 다음에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고 일본이 가라앉은 다음에 중국이 핵폭탄을 맞고 북극의 얼음이 다시 다 얼어버려도
**
“헤, 오늘은 성민이가 지각을 안 했군요?”
“그렇네요….”
“신기한 일이에요. 요즘 들어 더 그런 게. 무슨 바람이 불었나 싶다니까요.”
“그래 봤자 제 성질 남 못 줘. 분명히 며칠 내로 똑같아질걸.”
“종운 쌤도~. 이해는 하지만 너무 팍팍하세요~.”
“내가 그 놈 졸업하기 전에 인간 만드는 게 일생의 목표야, 쯧.”
려욱은 종운의 혀 차는 소리를 들으며 ‘성민이 오늘 학교에서 잤기 때문에 지각 안 한 거라던데요.’라는 말을 삼켰다. 시원의 말이 끝났을 땐 분명히 고자질하고 싶은 욕구가 반은 있었지만, 종운의 가시 돋친 말투에 관두었다. 찢어진 눈으로 받는 인상과는 달리 꽤 착한 성격인 종운은 평소에는 모든 것에 둥글둥글 뭉실뭉실했지만 유독 성민에 관해선 신경에 날이 서는 모양이었다. 물론 성민이 하는 행동을 보면 가만 있던 온순한 양도 물범을 본 북극곰이 되는 게 이치란 게 이미 학교 선생님들 사이의 정론이다.
려욱은 도대체 성민이 무슨 짓을 하고 다녀서 이렇게 화젯거리가 되는지 의아했으나, 시원이 재미 삼아 만든 ‘
고3이 된 후론 꽤 잠잠해졌단 평이지만 아직 3월이 채 지나가지 않은 상황이라 다들 ‘정말 그
“그나저나 김선생님은 적응할 만 해?”
“아, 네…. 그렇죠, 뭐.”
“무리하지마. 애들 상대로 힘 빼서 남는 거 하나도 없어.”
“예…. 명심할게요.”
“
“나야 건강체질이지만 김선생은 워낙 비리비리해서 그러지. 몸도 비쩍 말라서.”
“그야 저도 미친 개 같은 종운 선배의 체질은 믿지만요.”
이거…… 묘하게 압박이다. 시원이 본능적으로 저러는지 아니면 의식적으로 저러든지 어느 쪽이건 자신이 자리에서 뜨길 바라는 포스가 물씬 풍겨온다. 어째 웃으며 하는 말인데 ‘니 몸이나 챙기라고, 바보야.’라는 해석을 붙여줘야 할 거 같냐. 그것도 인터넷에서 일본 라이트 노벨에 중독된 애들이 쓸만한 말투로 간질을 일으킬 정도의 애틋한 문구를 만들어줘야 할 것 같다. 물론 시원이 하는 말에 특별한 게 있는 건 아니지만 자기 할 말은 다 하고 있다. 그런데도 두 사람 모두 위화감 없이 대화하는 게 더 무섭다. 체육계는 보통 다 이런가? 직설적으로 할 말 다해도 관계가 유지되는 거야? 예체능계는 같이 묶여 가는 게 아니었어??
어쨌거나 멋진 타이밍으로 종소리가 수업 시간을 알렸고 수업이 있는 시원과 려욱은 같이 자리를 뜨고 종운은 교무실로 돌아갔다. 예체능관으로 가는 길이 운동장을 가로질러야 하기에 건물 복도를 함께 빠져나가게 된 시원과 려욱은 사이에 오가는 말 없이 조용했다.
“
“예에. 학교 통틀어서 체육만 가르치는 사람은 저랑 그 쌤뿐이니까요. 신입일 때 많이 구박받았죠. 그래도 진심을 알고 나니까 좋은 사람이더군요. 올해는 맡은 일이 많아서 걱정이 좀 돼요.”
“정말 좋아하시는 모양이네요.”
“귀엽거든요. 개 같잖아요.”
뭐야, 얘… 무서워…….
마침 건물을 빠져나와 운동장으로 가는 시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려욱은 오한을 느꼈다. 혹시 성민에 대해 시원이 지나칠 정도로 구박해대는 건 종운의 탓이 아닌가, 하는 약간 오버스러운 넘겨짚기가 연상됐기 때문이다. 아니, 이거야 말로 뭔 개소리…다. 멀쩡한 사람(????)을 게이로 몰고 가다니, 어지간히 피곤한 모양이다.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예체능관으로 몸을 틀었다. 지금쯤 아이들이 난장판을 만들고 있을 시간이다. 지나가던 교감선생님이 혹시나 들린다면, 오늘 하루가 평탄하게 마무리되긴 그르칠 위험이 크다.
**
3월을 넘기고 4월이 지나, 잠잠한 성민에 의해 학교는 왠지 모를 실망감으로 늘어졌다. 성민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으로 나뉘던 아이들도 춘추전국시대마냥 그런 성민에 실망하거나, 그런 성민을 응원하거나, 역시
어쨌든 사회적 의미와는 다른 문제아였던 성민이 잠잠해진 것은 교감이나 선생님들에게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성민이 진정됐으니 이 조용해진 학교에선 입시 전쟁으로 순조롭게 뛰어들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선생님들이었으나….
“그러니까 여기서 인수분해도 제대로 못 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잖냐~!!”
“어떻게 ‘I know’와 ‘I see’도 구분을 못 하니? 그리고 have a time과 have the time의 차이점은 중학교 때 이미 배웠던 거잖아~~~~~악!!!!”
“이 관점은 작가의 시점으로 정리를 해야지. 사회적 풍념을 고려하면 그건 이미 다른 관점이라고 했잖아. 작가가 사회에 영향을 받은 것까지 고려하질 말라고. 문제를 보란 말이다!”
“큰 틀을 봐야지. 세부한 거 하나하나까지 보면 근현대사 마스터 못 해. 강화도 조약의 세율을 왜 외우니?”
“법은 무조건 외워. 이유가 없다니까? 법이 도덕 챙기는 거 아니야, 성민아!!! …그래. 도덕을 지키려고 법이 만들어 졌다고 치자. 아무래도 좋으니까 문제를 풀려면 맞는 내용을 적용시켜야지!”
“우리나라 지리도 모르면서 세계지리를 한다고 덤빈 정신은 가상한데, 성민아…. 이건 해설에 나온 내용이잖니. 이게 무슨 말이냐면…….”
쉬는 시간마다 찾아온 성민의 질문공세로 각 과목 담당 선생님들의 주름살은 한층 더 깊이 패이고, 다크서클의 면적은 더욱 넓어지고, 눈빛은 더욱 어두워져 얼굴만 보면 영락없이 방금 전 정리해고된 사원과 다름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성민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자각하지 못한 건지 남들 다 쫓는다는 족집게 강의가 아니라 교과서부터 정공법으로 파고 있었다. 수업시간엔 그래도 집중하는 편이어서 그런지 고3때까지 교과서를 쫓아오는 건 무리가 아니었지만 문제집까지 무난하게 풀 수준으로 갑자기 실력이 늘 리도 없었다.
“선생님들 좀 그만 괴롭혀. 과외 선생님들한테 물어 봤던 거야?”
“그건 아니고…. 몇 번 물어봤었는데 그 사람들은 요령만 가르치니까 기초를 쌓을 수가 없어. 요령은 다 알겠는데 그 요령을 피울 베이스가 없으니까 선생님들을 괴롭히는 거지.”
“의외로 성실한 타입이네. 멋진데?”
“… 그러면 조건 좀 낮춰줘. 전교 1등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나 다크서클 보이지? 요새 안 하던 공부 하느라 죽을 거 같애.”
성민이 안 하던 공부를 하며 려욱도 덩달아 성민의 얼굴을 볼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렇대도 하루에 한 번은 얼굴 도장을 찍는 성민이었고, 교무실에 자주 찾아와 려욱이 성민을 볼 수는 있었다. 다만 둘 사이의 대화 시간은 전보다 매우 줄었고, 문자나 전화도 잘 안 하는 성민의 성격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 오늘은 3학년 건물 뒤에 있는 잔디밭 옆 벤치에서 공부하고 있던 성민을 마침 지나가던 려욱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일부러 말을 붙인 것이다.
“네 모의고사 성적이 아마….”
“이번 달 거 총 200.”
“…설마 500점 만점 기준이냐?”
“응. 일본어 덕에 200 채웠어. 그래도 많이 오른 거야. 전엔 120, 140 이랬거든. 안 하다가 하니까 오르긴 오르더라고.”
“…할 말이 없다, 진짜…. 제 2외국어로 점수 채우면 뭐해! 원서 쓸 때 비율 얼마나 된다고! 일단 국영수로 200부터 채우고 와. 세~상에….”
“국영수로 200이면… 평균 64인데 말이 되냐? 150은 안 되겠어? 야, 야!! 려욱아!”
성민의 말에 황당함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려욱이 더 듣지도 않고 뒤돌아 간다. 쌀쌀맞은 태도에 쫓아갈 생각도 못 하고 서 있던 성민의 부름에 려욱이 고개를 퐥 돌렸다. 순간 목이 꺾인 듯한 아픔이 반대쪽으로 강렬하게 쳐들어오는 것을 애써 무시한 려욱은 속이 끓었다.
“테크닉은 25살이란 주제에 성적은 중학생 수준이네? 사람이 몸만 섞고 사냐? 전국 평균되기 전까진 말도 걸지마!”
더 말도 안 듣고 가버리는 려욱의 뒤에 홀려 남겨진 성민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전국 평균보단 높은 건데….”
뭐부터 문제였는지 착각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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